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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P&G 이수경 상무

한국P&G 이수경 상무 ▒ ⓢuccess

2005/05/17 14:28

복사 http://blog.naver.com/septembre27/20012769755


 
 
세계를 발견했던 대학시절
66년 말띠라서일까. 80년대의 대한민국은 너무 좁았다. ‘더 넓은 세상이 보고 싶어서…’, 이것이 연대에서 두 번째로 보낸 교환학생이 된 이유. 지금이야 거의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어학연수나 배낭여행을 떠나지만, 1986년은 해외여행 자유화가 실시된 직후라 외국에 나가본 사람도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미국의 대학생에 대한 정보는 TV 드라마에서 본 것이 전부. 그러니 미국 일리노이(University of Illinois)에서 마주친 현실은 너무나 낯설었다. 대학만 가면 공부로부터 해방되어 마음껏 즐기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의 대학생들은 너무나 치열하게 살고 있었던 것. 20년, 30년 먼 미래까지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두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흥청망청 마시고, 쇼핑하고, 핑크빛 데이트를 즐기는 것은 ‘베벌리힐스의 아이들’뿐이었고, 대다수의 대학생들은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보다 더 지독했다. 낮에는 용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공부를 하면서 1년이 지났다. “도넛 가게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이 가장 좋았어요. 팔고 남은 도넛을 싸갈 수 있기 때문에. 풋볼 경기장에서 팸플릿을 파는 일도 즐겨 했지요. 운동을 무척 좋아하는데, 팸플릿을 팔면 경기를 공짜로 볼 수 있었거든요. 그때 배운 것이 참 많았죠.”

한 걸음 늦은 출발
한국P&G 최초의 여성 임원이자 입사 8년 만에 상무를 단 ‘마케팅 스타’이지만 출발은 남들보다 늦었다. 돌쟁이 아이의 엄마로 스물아홉 살에 신입사원으로 시작을 했으니. 물론 대학에 들어가기 전부터 마케팅 분야에 관심은 있었다. 그러나 경제학을 전공한 아버지가 ‘시장은 학부에서 배워봤자 소용없는 것’이라며, 대학에서는 마케터에게 요구되는 기본 능력을 갖추라고 조언했다. 영문과에서 어학을 공부하고, 서울올림픽 때 미국 NBC 방송국에서 인턴사원으로 활동하고, 졸업 후에는 제일기획에서 광고 기획을 담당하고… 어느 순간, 꿈꾸던 것과 비슷하지만 조금씩 길을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시 궤도 수정. 국제학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후, 본격적으로 마케팅 분야의 취업에 도전했다. P&G에 입사하는 것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절대 경력 사원은 뽑지 않고, 업계에서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입사 시험(학생 세미나, 인턴십 등을 통해 반년 이상 걸린다)을 치러야만 했던 것. 광고 회사에 취업하면 경력을 인정받아 대리나 과장급으로도 갈 수 있는데 다시 신입으로 시작하겠다는 말에 친구들은 미쳤다고 했다. 회사 측에서도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는 마찬가지. 나이가 많고, 돌쟁이 아이가 있고, 게다가 1년 이상 실업 상태였던 그녀를 뽑는 것은 리스크가 컸다. 그렇지만 결국 입사에 성공. 진부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였다.

 
 
대중을 이해하는, 역전의 명수
위스퍼, 프링글스, 팬틴… 맡았던 브랜드마다 극적으로 시장 점유율을 올려놓은 것이 이수경 상무의 업적. 그런데, 인터뷰를 준비하다 보니 도무지 관련 자료를 찾을 수가 없었다. 한 사람을 부각시키면 직원 사이에 위화감이 생길 수 있으므로 개인 인터뷰는 거의 허락하지 않는 것이 P&G의 특성이라는 게 홍보 관계자의 귀띔. 그래서인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녀가 이루어낸 일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 “모두가 함께 해낸 건데요, 뭘”이라는 답변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개인을 강조하지 않고, ‘모두’를 생각한다는 것은 그만큼 대중의 힘을 잘 알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1999년 팬틴의 브랜드 매니저가 되었을 때, 제품의 시장 점유율은 1.3%에 불과했다. 론칭한 지 이미 6년이나 지난 존폐 위기의 브랜드. 당시 우리나라에서 샴푸란 ‘화장품’보다는 ‘비누’에 좀 더 가까운 세정제에 불과했기 때문에 ‘건강한 머릿결’을 강조하는 비싼 샴푸는 먹히지 않았다. 대중의 생각을 알기 위해 여성이자 주부인 자신이 소비자 속으로 뛰어들기로 결심. 수백~1천명을 상대로 한 소비자 조사를 셀 수도 없을 만큼 반복했다. 결과는, 우리나라 소비자에게도 가격보다는 건강을 중요시하는 ‘웰빙’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것. 1여년의 준비 끝에 이뤄진 리론칭은 성공적이었다. ‘?’만을 그려 넣은 샘플을 대대적으로 배포한 미스터리 전략(기자들에게 배포하는 홍보자료조차도 기업이 노출되지 않도록 백지 봉투에 넣어 보냈을 정도)과 2주 동안 제품을 사용해도 머릿결이 좋아지지 않는다면 100% 환불하겠다는 ‘14일의 약속’이 대중 사이에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그리고 리론칭한 지 1년 후, 팬틴은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

하루살이의 최선 다하기
20대 중반인 동기들 사이에서 나이 많은 아줌마로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것은 처음부터 ‘서바이벌’에 가까웠다. 회사에서는 젊고 아이디어 풍부한 동료들과 경쟁해야 하고, 집에 와서는 어린 아들을 돌봐야 했기 때문에.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일과 가정을 둘 다 완벽하게 꾸려나가는 ‘슈퍼우먼’이 되는 것은 애시당초 포기했다. 대신 회사에서는 일만, 집에서는 가족만을 밀도 있게 생각했다. “저는 하루살이예요. 매일 하고 싶은 일을 얼마나 잘했는지만 생각합니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하지 않은 시기에 일을 시작해 개척자 정신이 강한 또래 여자 직장인들에 비하면 자신은 부끄럽다고 말한다. 만능은 포기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이수경 상무가 맞벌이로 사는 법이다.
대다수의 맞벌이가 그러하듯, 그녀 역시 가족의 도움이 큰 힘이 되었다. 일명 ‘Supporting System’. 미국P&G에서 근무할 때에는 가족과 같이 시간을 보내기가 힘이 들었다. 일의 특성상 2주에 한두 번, 새벽 4시 비행기에 올라 며칠씩 출장을 다녀야만 했으므로. 이때는 남편에게 주부의 역할을 맡겼다. 한국에서는 특별히 자상하지도, 집안일을 잘 도와주지도 않던 남편이 집을 정리하고 아이를 챙겨 학교에 보냈다. 아이가 엄마의 일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도 다행스러운 부분. 일하러 가지 말라는 말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왜 ○○엄마는 회사 안 다녀?” 한다. “이번 주에 또 출장 가야 하는데 가기 싫다” 하면, “비행기 타는 거 좋으면서 내가 따라갈까봐 일부러 그러는 거지?” 한다. 이런 고마운 가족과 보내기 위해 그녀의 퇴근 시간은 오후 7시 30분. 일 적고 칼퇴근하는 외국계 회사니까 가능하겠지라고 섣불리 오해하지 말길. 새벽에 일어나 화장하고 아침밥 차리고 오전 7시 30분까지 출근하는 남모르는 노력이 숨어 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긍정의 힘’
이수경 상무와 대화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특성(그것이 약점일지라도)을 무기로 삼는 것에 능숙한 타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 직원의 수가 그리 많지 않은 회사에 주부로 들어왔지만 오히려 자신의 경험을 되살려 마케팅에 적용시키고, 뷰티·패션 분야에 대한 남다른 관심(미국 장기 근무에서 돌아온 지 1개월이 채 안 되었는데, 요즘 유행을 다 알고 있었다)을 활용해 시장 트렌드를 파악한다. 그 원동력은 긍정적인 마인드.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경제 수준이 선진국만큼 높지는 않지만, 소비자들의 요구 수준은 상당히 높지요. 트렌드에 민감해 시장 상황이 금방 변하고요.” 남들은 한국 시장이 참 까다롭다 하는데, 그녀는 너무 재미있다고 한다. 한국P&G 최초의 여성 임원으로서 부담감은 없는지 물었더니, “뭐, 별로요. 열심히 해서 본받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죠” 한다. 역시나! 부정적인 생각은 상황을 위기로 만들고, 긍정적인 생각은 기회로 만든다. 한국P&G의 이수경 상무가 ‘여자라서, 영…’을 ‘여자라서 탁월하다’로 바꿔놓을 그날을 기대한다.